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 소학생 유괴 살인사건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범행 수법이 흔하지 않으며 현대의 과학수사 능력이라면 상당히 해결하기 쉬운 사건이기 때문이다. * 현재라면 피해자의 체내에서 정액을 검출해 DNA를 분석하거나 전화 기지국을 추적해 범인이 통화한 지역 일대의 동선을 파악하고 지역내 [[CCTV]]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분석한다면 충분히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CCTV나 블랙박스가 있을 리가 없었고 [[지문인식]]을 제외한 과학수사 기법이 보급되지 않아 범인을 체포할 수 없었다.[*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는 각각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에 대중화되었고 DNA를 이용한 과학수사 기법은 1990년대 [[이춘재 연쇄살인 사건]]을 시점으로 일선 경찰에 보급되었다. 그러나 지문인식 기록은 1910년대부터 [[조선총독부]]와 [[대만총독부]]와 [[관동주]] 및 [[가라후토청]]과 [[남양청]]과 [[경시청]]의 상호 교환을 재빨리 실행했다.] * 물론 당시에는 전화 소유자가 한정되어 있었던 만큼[* 당시 전화는 기기값과 이용료 모두 고가여서 쉽게 이용할 수 없었고 일본인들과 조선인들 가운데 극소수의 부유층 또는 상인들만 겨우 이용할 수가 있었다. 남한에서 전화가 널리 보급된 건 먼 훗날인 [[1982년]]에 [[체신부]]의 전화 사업이 [[KT|한국전기통신공사]]로 분리독립하고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면서 전화 회선의 보급이 대중화되면서부터였다.] 이 점에 주목하고 전화 이용자의 시간대별 알리바이를 분석하거나 교환원을 조사하고 전화가 설치된 곳 일대에 탐문 수사를 했더라면 보다 효율적인 수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경찰은 피해자의 친인척을 조사하는 데 그쳤고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